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인천 유나이티드 FC/등번호 (문단 편집) == 주요 등번호 == ||<-2><:>{{{#white '''인천 유나이티드의 의미 있는 등번호'''}}}|| ||<:>{{{#white '''번호'''}}} ||<:> {{{#white '''세부사항'''}}}|| ||<:> {{{#white '''1'''}}} ||여타 구단과 마찬가지로 인천에게도 주전 골키퍼를 상징하는 등번호인데, 특히 인천의 초대 레전드 '''[[김이섭]]'''이 달았기에 의미가 있는 번호. 김이섭 이후로도 1번을 달았던 선수는 웬만하면 주전 골키퍼로 낙점되었다. 다만 김이섭 다음으로 이 번호를 받은 선수인 [[윤기원(축구선수)|윤기원]]이 의문의 죽음을 맞으면서 비운의 번호로 남기도 했다.[br][br]역대 1번의 주인은 '''[[김이섭]] - [[윤기원(축구선수)|윤기원]] - [[유현(축구선수)|유현]] - [[권정혁]] - 유현 - [[조수혁]] - [[정산(축구선수)|정산]] - [[이태희(1995)|이태희]] - [[김동헌(축구선수)|김동헌]]'''으로 1번의 주인은 항상 주전이었다. 김동헌이 상무에 입대하는 2024년부터는 주인이 바뀔 예정인데 과연 누가 1번을 물려받을지 또한 인천 팬들의 관심사 중 하나이다.|| ||<:> {{{#white '''4'''}}} ||인천 역사에 큰 역할을 했던 [[수비형 미드필더]] 노종건이 4년간 사용한 등번호. 노종건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항상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팀의 든든한 기둥 역할을 해왔고, 2008년에는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주장까지도 역임했었다. 그러나 2009년 부상을 당한 후 컨디션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결국 2010년을 마지막으로 인천을 떠났다. 노종건은 이전에는 26번, 19번, 14번을 사용했다가 [[이창현(1985)|이요한]]의 이적 이후 4번으로 옮겼고, 이후 계속 이 번호를 사용했다. 노종건이 인천을 떠난 후 수비수 디에고가 잠시 달았으나 이 선수는 심각한 부진으로 반 시즌만에 방출되었고, 그 다음은 센터백 [[김태윤(축구인)|김태윤]]이 달고 있다가 2014년에 수비형 미드필더 [[배승진]]에게 번호가 오면서 수비형 미드필더에게 주어지는 번호로 자리매김했다. 그 뒤에 4번을 받은 [[김원식(축구선수)|김원식]], [[김경민(1990)|김경민]], [[한석종]]도 해당 포지션에서 활약했던 선수.[* 김경민은 센터백이 주포이지만, 당 시즌에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할 계획이 있었고 번호도 4번으로 옮겼다. 다만 부진으로 인해 한 해만에 30번으로 복귀. 한석종은 전형적인 수비형 미드필더보다는 공격 성향도 있는 박스 투 박스이지만 수비적인 롤에서 능력이 극대화되는 선수이다.] 한석종의 입대 이후에는 새로 영입된 [[김근환]]이 4번을 받았는데 이 선수 역시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를 주로 소화하는 선수이다. 하지만 본인의 부진과 이에 따른 재계약 불발로 1년만에 팀을 떠났고, 2019년에는 [[성남 FC]]에서 넘어온 센터백 겸 수비형 미드필더인 [[문지환]]이 이 번호를 달았다가 2021년에 [[김천 상무]]로 입대하면서 결번 상태로 있다가 여름 이적 시장 때 베테랑 수비수 [[강민수(축구선수)|강민수]]가 입단하면서 4번을 받았다. 그 뒤 강민수가 전남으로 이적하면서 2023시즌부터는 주장 [[오반석]]이 쓰게 되었다.|| ||<:> {{{#white '''7'''}}} ||역시 타 팀과 마찬가지로 에이스를 상징하는 번호인데, 인천에서는 2010년대 중반부터 새로운 레전드 후보인 '''[[김도혁]]'''을 상징하는 번호로 자리잡았다. 김도혁이 달기 이전에도 7번을 달은 선수로는 2007년 10-10을 기록했던 [[김상록]], 인천에 있을 당시 인천의 공격을 이끈 [[이보(축구선수)|이보]], 2012년 인천을 먹여살린 [[남준재]], 이적 이후 꼬였으나 인천 시절에는 좋은 미드필더였던 [[이재권]], 그리고 2005 준우승의 핵심 멤버 [[서동원(1975)|서동원]] 등 팀의 에이스 급 선수들이 있었지만[* 모든 7번을 달은 선수가 잘 한 것은 물론 아니다. 대표적으로 [[마에조노 마사키요]]가 기대에 못 미쳤고, ~~[[도화성]]~~은 승부조작에 연루되었다. 그리고 [[김치우]]는 실력과는 별개로 인천 팬들과 완전히 척을 진 케이스.] 번호가 자주 바뀌는지라 누군가를 상징하는 번호는 아니었다. 그러다가 [[김도훈]]이 부임한 이후 김도혁이 7번을 받은 뒤 세 시즌 연속으로 그 번호를 받으며 김도혁 하면 떠오르는 등번호가 되었다. 2017년 말 김도혁이 입대한 후에는 팀의 새로운 [[크랙]]인 [[송시우]]가 이 등번호를 물려받았고, 송시우가 [[상주 상무]]로 입대한 후에는 과거 인천의 에이스였고 2013년에 7번을 달기도 했던 레골라스 '''[[남준재]]'''가 인천에 복귀하면서 다시 7번을 받았다. 그러나 남준재가 시즌 중반 제주로 떠나면서 다시 김도혁의 차지가 됐다.|| ||<:> {{{#white '''9'''}}} ||주전 공격수의 번호로 유명한 9번이지만, 인천에서는 한동안 '''저주받은 등번호'''로 여겨졌다. [[아스날 FC|멀리 영국에 있는 9번의 저주로 유명한 모 팀]]처럼 '''[[아스날 9번의 저주|인천 유나이티드 9번의 저주]]'''라고 칭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. 2018년 이전까지는 이 번호를 달고도 좋은 인상을 남긴 선수는 2005년 딱 1년만 이 번호를 달고 있던 [[방승환]][* 그 외의 시즌에는 11번을 배정받았다.]이 유일했다. [[제난 라돈치치]]마저도 31번이 아닌 이 번호를 달았을 때는 잉여 소리를 들었고, ~~[[이준영(1982)|이준영]]~~은 승부조작으로 인해 흑역사가 되었으며, [[오그넨 코로만]]은 9번을 달자마자 플레이가 읽혀 팀을 떠났고, [[사미르 베크리치]]도 코로만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. [[강수일(축구선수)|강수일]]은 터지지 않는 유망주를 벗어나지 못하다 음주 폭행 시비로 인해 방출되었고, [[김명운(축구선수)|김명운]]은 인천 팬들의 기대감을 부숴버린 공격수. 그리고 그 정점을 찍은 것이 '''돌발 은퇴의 [[설기현]]'''. 설기현 이후로도 9번은 저주를 벗어나지 못했는데, [[송제헌]]은 시즌 초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부상으로 결국 한계를 만났고 '''[[달리보르 베셀리노비치]]'''는 김명운 이상의 악몽으로 남았다.[br]이렇게 길고도 길었던 9번과의 악연은 2018년에 '''드디어''' 새로 영입된 몬테네그로 국가대표 공격수 [[스테판 무고샤|무고사]]가 [[유병수]] 이후 최초로 리그 10골을 넘기면서[* 시즌 전체로는 2016년 [[케빈 오리스]]가 10골-10도움을 달성했다. 한편 2018년에는 [[문선민]] 역시 10골을 돌파하였다.] 이 등번호의 '''저주를 깨뜨렸다.''' 그 이후, 무고사를 상징하는 번호가 되었으나, 무고사가 [[비셀 고베]]로 이적하면서 한동안 공번 상태였으나 2023년 여름 무고사가 인천으로 복귀하면서 다시 주인을 찾게 되었다.|| ||<:> {{{#white '''10'''}}} ||팀의 핵심을 상징하는 10번인 만큼 인천에서도 최고의 활약을 보여준 선수들이 달았다. 대표적인 예시가 '''K리그 최연소 득점왕 [[유병수]].''' 그 외에도 '''[[데얀 다미아노비치|데얀]], [[케빈 오리스|케빈]], [[이천수]], [[셀미르]], [[엘리아스 아길라르|아길라르]]''' 등 실력 내지는 상징성이 넘치는 선수들이 가지고 있었다. 그러나 최초의 10번 [[조르제 토미치]]나 이적으로 논란만 일으키다 끝난 알미르, 그리고 '''먹튀 [[웨슬리 스미스 아우베스 페이토사|웨슬리]]''' 등 자격이 의심되는 선수들도 꽤 섞여 있었다. 아무래도 이천수가 3년간 10번만을 달고 있었기 때문에 이천수 하면 떠오르는 등번호가 되었다. 이천수가 은퇴한 후에는 팀의 플레이메이커 아길라르를 상징하는 등번호로 자리매김했다. 2023년부터는 브라질 공격수 [[에르난지스 호드리기스|에르난데스]]가 사용한다.|| ||<:> {{{#white '''11'''}}} ||[[방승환]]을 제외하면 이 번호를 한 해 이상 유지한 선수가 없고, 그 중에서도 [[이근호]], [[오그넨 코로만]], [[네이선 번즈]]를 제외하면 '''모두 그 다음 해에 이적했다.''' 그마저도 이근호는 2군에만 있었고, 코로만은 급속도로 부진하여 시즌 중도에 쫓겨났고, 번즈는 식물인간이나 마찬가지였다. 심지어 인천의 상징으로 떠오르던 [[진성욱]]도 11번을 달고 괜찮은 활약상을 보여주었으나 시즌을 마치자마자 팀을 떠났다. 11번을 단 선수 중 진성욱이나 [[김인성]] 등 우수한 플레이를 보여준 선수들도 있었지만 인천에 오래 있지 못했다는 점은 항상 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. 그러나 2017년의 [[박용지]]가 이 번호를 달고 4골 1도움이라는 그럭저럭 괜찮은 기록을 보인데다가 다음 해에 잔류하는 것에도 성공하면서 간만에 징크스를 깨는 케이스가 될 지 주목됐는데... 그 다음 시즌에는 심각한 부진을 보여주었고 결국 시즌 도중 [[상주 상무]]로 입대하게 되면서 다시 결번이 되었다. 여름에 [[조주영]]이 임대로 합류하면서 새 주인을 찾았지만, 시즌 말미까지도 리그 한 경기 출전에 그치면서 저주가 이어질 전망이다. 2019 시즌에는 [[문창진]]에게 11번이 왔는데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았지만 나이가 걸려 1년만에 [[상주 상무]]로 입대했고, 2020년부터는 [[제주 유나이티드]]에서 넘어온 새로운 에이스 [[김호남(축구선수)|김호남]]이 11번을 달게 됐으나 1년만에 팀을 떠나면서 2021년에는 주인이 없었다. 2022년에는 [[J리그]] 출신 공격수 [[이용재(축구선수)|이용재]]가, 2023년에는 [[제주 유나이티드 FC|제주]]에서 이적해 온 [[제르소 페르난데스|제르소]]가 이 등번호를 받았다.|| ||<:> {{{#red '''14'''}}} ||[[요한 크루이프]], [[티에리 앙리]], [[이천수]][* 이천수는 대표팀 한정. 인천에서는 상술했듯이 10번을 달았다.] 등 전설적인 공격수들의 번호였던 14번이지만, 인천에서의 14번은 '''인천의 저주받은 등번호들 중에서도 [[끝판왕]]이다.'''[br][br]초기에 [[이정수(축구선수)|이정수]], [[노종건]]에게 이 번호가 주어질 때만 해도 나쁘지 않았다. 그러나 [[이근호]]와 트레이드된 [[윤주일]]이 14번을 달고 [[먹튀]]로 전락하면서 '''저주가 시작됐다.''' 윤주일은 반 년만에 나갔고, 그 뒤 칼레가 들어와 이 번호를 받고 주전으로 활약했지만 활약과는 별개로 반 시즌을 끝으로 또 떠났다. 이후 [[이장관]]은 딱 6개월 뛰고 은퇴했으며, 도재준은 2군만을 전전했다. 전 시즌 의외의 활약을 펼친 [[김민수(1984)|김민수]]도 14번을 받자마자 부진에 시달렸고, 이를 이은 [[안재곤]]은 도통 경기장에 보이지 않는 사이버 선수였다. 기대감을 모았던 이적생 [[김창훈(1987)|김창훈]]도 먹튀로 전락했고, 심지어 '''2013년의 에이스 [[이석현(축구선수)|이석현]]조차 2014년에 이 번호를 받고 추락했으며,''' 그 다음으로 14번을 받은 [[김재웅(1988)|김재웅]]과 [[이슬기(축구)|이슬기]]는 2015년에 '''둘이 합쳐도 인천에서 5경기를 채 소화하지 못했다.'''[* 김재웅은 전반기에 인천에서 14번을 달고 뛰다가 [[수원 FC]]로 이적했고, 그 해 후반기에 이슬기가 병역을 마치고 합류하여 14번을 달았는데, 김재웅과 이슬기 2명 다 1경기 출장에 그쳤다.] 로테이션 멤버로 가능성을 확인받던 [[윤상호(축구선수)|윤상호]]는 2016년에 14번을 받음과 함께 비판 1순위가 되었었고, 2017년에 기대를 받으며 들어온 [[이학민]]은 오른쪽 김창훈 소리를 들으며 역시 쓸쓸히 퇴단했다. 이후 2018년에 윤상호가 다시 14번을 달았지만 역시 출장 기회가 적은 것은 마찬가지. 2019년부터는 [[양준아]]가 또 저주를 이어간 끝에 2020년을 마지막으로 팀을 떠났고 (...) 2021년에는 기존에 32번을 달았던 [[정동윤(축구선수)|정동윤]]이 달고 있다가 [[김천 상무]]로 입대하면서 잠시 결번이 됐으나, 이후 [[김천 상무]]에서 전역한 [[문창진]]이 그대로 등번호를 이어받았다. 하지만 문창진도 14번을 받은 후로는 출장 기회를 얻지 못하고 [[부산 아이파크]]로 이적하면서 결과적으로는 저주를 이어가게 됐다. 2023년부터는 정동윤이 전역 후 복귀해서 다시 쓰고 있다.|| ||<:> {{{#white '''16'''}}} ||이윤표는 본래 '7'을 좋아했는데, 축구에서 7의 의미[* 7번은 기본적으로 우측 [[윙어]]들에게 돌아가는 번호이고, 윙어가 아니더라도 10번과 함께 공격을 이끄는 팀의 에이스에게 붙여지는 경향이 있다. 수비수가 7번이나 10번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.] 때문에 17번을 선호했다고 한다. 그러나 인천 입단 당시 17번의 주인은 '''[[전재호]]'''였고, 그에게서 번호를 가져오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1+6=7인 16번을 택했다. 그런데 전재호가 떠난 뒤에도 그 번호를 유지한 결과, 이윤표가 [[임중용]]과 [[전재호]]의 아성에 도전하는 레전드의 반열이 오르는 시기까지 이윤표가 16번을 가지게 되면서 새로운 상징적인 번호로 떠올랐다. 아쉬운 점은 2015년에 이윤표가 팀을 떠날 뻔했다가 극적으로 잔류한 바람에 [[이성우(축구선수)|이성우]]에게 잠깐 번호가 넘어갔던 것인데,[* 한편 이윤표는 이 때 7이 두 개인 '''77'''번을 골랐다.] 당시에는 이윤표가 레전드 소리를 듣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 중론이어서 이 번호도 크게 의미 없이 넘어갔지만 이후로 이윤표의 활약이 거듭되고 최고참이 될 때까지 잔류하면서 20번에 이은 다른 상징으로 남을 가능성이 보인다. 여담으로 초창기 멤버 중 스타로 꼽힌 [[최태욱]]이 16번을 골랐었다. 이윤표가 계약 만료로 인천을 떠난 후에는 새로 합류한 수비수인 [[강윤구(1993)|강윤구]]가 16번을 달게 됐는데, 과연 이윤표의 아성을 넘어설 수 있을지가 중요할 듯 했으나 강윤구가 1년만에 등번호를 6번으로 바꾸면서 [[제주 유나이티드]]에서 이적한 [[이동수(축구선수)|이동수]]가 16번을 받았다.|| ||<:> {{{#white '''17'''}}} ||2004년부터 2011년까지 17번의 주인은 항상 전재호였다. 전재호가 인천에서 큰 활약을 한 만큼 17번 하면 전재호가 떠오르는 팬들이 대다수. 다만 그가 떠난 이후에 윙백 내지는 풀백들이 이 번호를 이어갔다면 의미가 있었겠으나 그의 후임 17번은 [[문상윤]]이었고 문상윤이 번호를 바꾼 후에는 존재감이 없던 [[김용찬]]이 가져가면서 의미가 퇴색되었다. 잠시 [[김대경]]과 [[권완규]]가 달면서 비슷한 느낌이 돌아오나 싶었으나 그 다음 주인은 '''미드필더''' [[이상협(1990)|이상협]]. 이상협 자체의 활약은 점차 개선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, 전재호의 번호라는 의미가 다소 퇴색된 것은 아쉽다. 잘만 하면 20번이 중앙 수비수의 번호가 된 것처럼 갈 수 있었을수도 있었다. 이상협의 입대 이후에 번호를 받은 선수는 [[고슬기]]. 고슬기의 활약도도 꽤 괜찮은 편이어서, 어느새 점점 미드필더에 어울리는 번호가 되는 느낌이다. 2019 시즌에도 [[박세직(축구선수)|박세직]]에게 넘어가서 이제는 미드필더의 번호로 바뀌어가는 추세. 그러다가 2020년에는 새로 합류한 풀백 [[김준엽(축구선수)|김준엽]]이, 2021년에는 윙어 [[유동규(축구선수)|유동규]]가, 2022년에는 김준엽이 다시 달게 되면서 다시 측면 자원들의 번호가 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.|| ||<:> {{{#white '''19'''}}} ||[[이정수(축구선수)|이정수]]를 시작으로 비운의 레전드 [[노종건]]이 물려받았고, 이후에는 계속 주인이 바뀌다가 2012년부터 [[박준태(축구선수)|박준태]]를 시작으로 측면 공격수나 백업 공격수들에게 이 등번호가 돌아가기 시작했다. 박준태가 인천을 떠난 후에는 [[디오고 아코스타]], [[주앙파울로]], [[케빈 오리스]] 등 외국인 공격수들이 사용하다가, 2016년에 신인으로 입단한 [[송시우]]가 프로 1년차부터 팀의 특급 조커로 활약하면서 '''시우타임'''이라는 별명으로 센세이션을 몰고 옴에 따라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한 등번호이다. 송시우가 잠시 7번으로 바꿨을 때는 아시아 쿼터였던 [[콰베나 아피아쿠비]]가, 송시우가 군 복무를 위해 팀을 떠났을 때는 [[허용준]]과 [[서재민(1997)|서재민]]이 사용했으나 모두 송시우만큼의 임팩트는 없었고, 결국 송시우가 전역과 동시에 19번을 되찾으면서 [[송시우]]를 상징하는 등번호로 자리매김했다. 송시우가 2023년에 [[서울 이랜드 FC]]로 복귀한 후에는 공번 상태.|| ||<:> {{{#yellow '''20'''}}} ||임중용이 2004년부터 2010년까지[* 2011년에는 플레잉 코치로 전환하면서 번호도 48번으로 바꿨다.] 가지고 있었고, 임중용이 2005년 준우승 당시의 주장인데다가 투지와 인기를 갖추었고 또 '''인천 최초의 시즌 [[베스트 일레븐]] 수상자'''라서 20번은 팀의 상징적인 번호로 남았다. 실제로 20번을 달았던 수비수들은 모두 실력으로는 최고를 인증받은 선수이다. 비록 임중용의 후임 [[정인환]]이 이적 사가로 20번의 이름에 먹칠을 하긴 했으나, 정인환 역시 국가대표에 뽑힌 수준급의 선수였다. [[안재준]]은 '''인천의 아들''' 소리를 들을 정도였고, [[마테이 요니치]]는 '''2년 연속으로 [[K리그 클래식]] [[베스트 일레븐]]에 등재'''되었을 정도의 두말할 것도 없는 K리그 탑클래스. [[고르단 부노자]]는 논쟁이 있기는 해도 실력은 확실함을 모두에게 인정받았다. 2021년부터는 새로운 아시아 쿼터인 [[해리슨 델브리지]]가 이 번호의 주인이 됐으며, 델브리지 또한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인천의 주전 수비수들을 위한 등번호라는 것을 다시금 증명하고 있다.||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